"으으…됐으니까 빨리 어떻게 좀 해줘, 거기에 불이 붙은 거 같다고! 위스키 한 병을 죄다 들이부은 거 같단 말이야!"
"술은 내가 마시고 싶어, 알아?"
버럭 화를 내면서도 맥코이는 커크의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하이포를 놓았다. 윽! 진통제를 맞은 커크의 표정은 더욱 구겨졌지만 맥코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행성 네크론에 생명반응을 감지하고 이를 추적하기 위해 탐사를 나갔던 커크는, 다른 승무원들이 멀쩡히 귀환한 것과 달리 언제나 그랬듯 골치 아픈 문제를 달고 왔고. 늘 그랬듯 맥코이의 뒤치다꺼리를 필요로 했다.
커크에게서 샘플을 채취한 맥코이가 분석기를 가동시키곤 커크를 돌아봤다.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워있는 커크는 마치 배앓이를 하는 것처럼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고, 쉬지 않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왜 다 같이 탐사를 나가도 너만 이렇게 황당한 지경이 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넌 아무래도 우주에게 미움을 받는 게 분명해."
"…그 반대야, 본즈. 어쨌든 목숨이 붙어있다는 점에서 이 우주는 날 사랑하고 있는 거지……."
"하여튼 입은 살았네."
"본즈가 알아서 해 줄 테니까……여유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난 엔터프라이즈의 수석군의관을 믿거든. "
"하나도 안 고마워, 새끼야."
"흐흐, 내심 좋으면서 그래……근데 나 진짜 아파. 진통제 소용 있는 거 맞아?"
"…어디 봐봐."
맥코이는 트라이코더를 통해 커크의 상태를 살폈다. 커크는 비정상적으로 체온이 상승하고 있었고 특히 직장에서 가까운 부분이 기이할 정도로 고온이었다. 직장 안 점막의 수분이 증발하면 약간의 움직임에도 출혈이 발생할 수 있었고, 지혈이 까다로운 부위라 곧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넌 왜 하필 다쳐도 이런 데를 다치는 거야? 혀를 차던 맥코이는 커크의 엉덩이에 박혀있었던 규소계 생명체의 이빨 조각을 분석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
의료실로 불려온 스팍은 한참 맥코이의 설명을 듣는 중이었다. 스팍은 맥코이가 핵심을 피해 빙빙 돌려 말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결론은 제가 선택되었다는 말씀입니까, 닥터 맥코이."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부함장님이 가장 적합한……신체조건을 지녀서 말입니다."
"이것이 최후의 수단인 것이 맞습니까."
스팍이 그리 내켜하지 않는 느낌 - 누가 내켜하겠냐만 - 인 듯 해 맥코이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습니다. 이 함선에서 합성할 수 있는 모든 진통제와 진정제를 투여……하고 싶었다만 잘 알다시피 저 녀석의 빌어먹을 알레르기 체질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고. 사용할 수 있던 것들은 완벽하게 무용지물이었어요. 아직 정확히 그 원리를 알 수는 없지만 현재 짐의……직장 내 점막이 발열하는 게 문제입니다. 원래는 목줄기를 물어서 호흡기를 마비시켜 죽일 목적인 거 같은데…."
"그런데 함장님은 엉덩이를 물렸군요."
"그것도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짐을 저렇게 만든 렐릭에 대한 관련 논문이 거의 없어서 애를 먹었지만…이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해서는 렐릭의 산란기에 분비되는 특별한 호르몬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산란기가 아니고 우리는 그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어요. 대신 그 호르몬과 가장 유사한 건……."
"벌컨의 체액이라는 겁니까."
"그렇다는 얘기가 되네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렐릭을 포획해 강제로 산란기를 유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방법은 없으니…."
"함장님은 어디계십니까."
"방에 돌아가고 싶어 해서 돌려보냈습니다. 이미 말해뒀으니까…지금…부함장님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얼마의 기한을 드려야 치료제를 합성하실 수 있습니까."
"……최대한 빨리 해보겠다는 말 밖에 못하겠군요."
닥터 맥코이를 믿겠습니다. 스팍은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의료실을 떠났다. 커크에게로 향하는 스팍의 뒷모습을 보며 맥코이는 커크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를 구해줄 유일한 생명의 은인이 얼마 전까지 아웅다웅했던 스팍이고, 치료 방법이……둘의 정사라니.
✣✣✣
"함장님, 스팍입니다."
문이 열리자 침대 위에 엎드려 있는 커크가 보였다. 커크는 멀리서 봐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숨을 쉬기가 어려운 듯 호흡이 거칠었다. 스팍이 가까이 다가오자 열에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왠지 지금 널 보니까 무지 섹시해 보이는 거 알아?"
"농담하실 기력이 있는 걸 보니 아직은 위험한 상황은 아닌 듯 하군요."
"하하…이렇게라도 얘기해야…덜 어색할 거 같아서."
사실은 죽을 거 같아. 커크가 베개에 고개를 묻고 가쁜 숨을 달랬다. 들어오자마자 셔츠를 탈의하기 시작한 스팍이 커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저와 성교를 해야 하는 상황에 어색함을 느끼십니까."
"……기쁨을 느낀다고는 못하겠는데, 스팍."
"함장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커크가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맥코이에게서 자신이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 들어 알고 있는 커크는 이십분 전부터 스팍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그가 분명히 동의할 것을 알았지만. 둘은 이제야 막 서로를 이해하고 친구로 조금씩 인정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이 사고가 두 남자의 사이를 망칠까봐 두려워졌다.
겨우, 겨우…서로를 보고 이를 드러내지 않게 되었는데. 저 무표정한 뾰족 귀에게 겨우 우정 비슷한 걸 느끼고 있었다고. 커크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져 머리를 쥐어뜯었다. 겉으로는 함장답게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 마음먹은 대로, 의지만으로 참고 견딜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 커크의 안은 불이 붙은 것처럼 따갑고 쓰리고 아파서, 스팍의 앞에서 울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하아…제길. 스팍, 미안해……."
"함장님께서 사과를 하셔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이는 함장님의 생명을 구할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며 저도 그에 동의한 상태입니다."
"…평소엔 이런 게 재수 없었는데 오늘은 좀 고맙다?"
"함장님의 의복은 제가 벗겨드려야 합니까."
"그래…다정하게 벗겨달라고……응?"
커크는 어색함을 지우려고 애를 썼다. 스팍이 말한 대로야. 이건 어디까지나 치료를 위해서,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뿐이라고. 첫 경험하는 샌님처럼 부끄러워할 필요 없단 얘기야. 커크는 스스로를 타이르며 일부러 밝게 웃어보였다.
스팍은 열에 들뜬 커크의 노란 셔츠를 천천히 벗기고, 또 그 아래 받쳐 입은 까만 셔츠, 부츠, 바지, 속옷을 차례대로 벗겨줬다. 약간 마른 사내의 몸은 고열로 뜨거웠지만 이상하게 땀 한 방울 흘리고 있지 않다. 인체는 땀을 발산해서 체온을 내리는데, 이렇게 옆이 높은데도 땀이 나지 않는 다는 건 위험한 증상이었다.
스팍은 제 앞에서 웃어 보이는 커크가 태연한 척 농담을 하는 와 중에도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의 허벅지가 경련하고 있었으니까. 커크의 옷을 모두 탈의시켜준 후 자신도 완전히 나체가 된 스팍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저 치료를 위한 행위이니 마음에 담아 두실 필요 없습니다."
"아아……물론이지."
아랫배를 인두로 지지는 듯한 열기를 무시하며, 커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래. 이건 치료다. 나도 스팍도 이성애자니까, 이런 일로 관계가 바뀌진 않을 거야. 기껏 쌓은 동료애나 우정이 틀어지진 않을 거라고. 그렇게 자기 최면 하듯, 되뇌던 커크가 스팍을 올려다보았다. 붉게 충혈 된 눈이 습기로 젖어있었다.